웨슬리는 18세기 영국 교회 내의 복음주의 부활의 핵심 인물이었고 오늘날 약 8천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감리교회의 창시자였다. 그는 일생동안 놀라운 4만개의 설교를 설교했다.
초기 생활 및 영향
존 웨슬리(Jacky)는 1703년 6월 15일 링컨셔 엡워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인 사무엘과 수잔나 웨슬리 사이에서 태어난 19명의 아이들 중 15번째였다. 삶은 엄격한 구조로 되어 있었고, 정확한 식사시간과 기도시간도 있었다. 수잔나는 아이들에게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면서 홈스쿨링을 시켰다. 그들은 신약성서의 주요 부분을 암기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1709년 2월 9일, 화재로 엡워스의 직장이 파괴되었고, 다섯 살 난 존은 다른 남자의 어깨에 서 있는 교구민에 의해 2층 창문에서 구조되어야 했다. 그 사건은 그의 어머니 수잔나가 그를 "불에서 뽑아낸 브랜드"라고 성경에 묘사한 것을 낳았다. 그것은 웨슬리에게 심오한 영향을 끼친 묘사였고 그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원을 받았다는 믿음은 평생 동안 그와 함께 있었다.
웨슬리는 런던 헌장학교와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교회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1720년 평민으로 입학했다. 성실하지만 사교적인 학생이었던 그는 커피숍을 방문해 당구, 체스, 테니스를 쳤다. 1724년 졸업 후 성령을 받아 1725년 9월 그리스도교회 성당에서 디콘이 되었다. 1년 후 그는 옥스퍼드 링컨 칼리지의 펠로우로 임명되었고, 1728년에 성직자로 임명되었다.
감리교단의 시작
1729년 그의 동생 샤를도 지금쯤 그리스도교회에서 '성스러운 클럽'이라는 사회를 세웠다. 회원들은 매일 기도, 성경 공부, 단식과 같은 경건한 규율을 위해 만났다. 그들은 또한 옥스포드 교도소에 수감자들을 방문하면서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존은 그들과 합류했고, 곧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새벽 5시에 기도를 시작으로 세심한 열정으로 그들의 나날을 계획했다. 비평가들은 야유하듯 그 그룹을 감리교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그들이 기꺼이 받아들인 칭호였다.
1735년 존과 찰스는 미국 식민지 조지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옥스포드를 떠났다. 건널목 도중 존은 특히 심한 폭풍우 속에서 차분하게 찬송가를 부르는 독일 모라비족 무리에게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한번은 미국에 가서는 일이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는 신도들과 사이가 틀어졌고, 그가 구애를 하던 한 소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는 패배하고 우울하게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738년 5월 24일 런던에서 열린 그들의 회의에 참석하면서 모라비아인들과 계속 연락을 취했다. "저녁에 나는 로마인들에게 서문에 대한 루터의 서문을 읽고 있던 알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사회에 아주 마지못해 갔다. 9시 15분쯤 전,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느님이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변화를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경험은 웨슬리의 삶을 바꾸는 것이었다. '신념에 의한 찬양'을 가르치면서, 그는 여행을 하고 끊임없이 설교를 했으며, 종종 그들의 전통 마을 문화에서 뿌리를 내리고 주로 교회에 의해 무시된 새로운 도시화된 대중에게 도달하기 위해 야외 설교와 같은 비전통적이고 논란이 많은 관행을 채택했다. 키는 겨우 5피트 3인치였지만, 그는 강력한 웅변가였고, 종종 한번에 2만 명까지 설교했다.
웨슬리는 평생 동안 성공회 신자로 남았고 그의 추종자들은 개인 가정인 "사교"에서 처음 만났다(주간마다 만나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자선을 위한 돈을 모으는 모임) 또한 모두 영국 교회의 신도들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야 감리교회가 따로 설립되었다.
웨슬리는 1791년 3월 2일 죽기 불과 며칠 전, 87세의 나이에 여전히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는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인용하며,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죽음을 만났다. 그의 마지막 말 중에는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도 있었다. 그는 런던의 시티로드에 있는 그의 예배당에 묻혔다.
그리스도교회에서 웨슬리는 그가 한때 설교했던 교단 발치에 있는 바닥 명판에 의해 기념된다. 그것은 그가 태어난 지 3세기 되는 해인 2003년에 그곳에 세워졌다. 대회당에도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https://www.chch.ox.ac.uk/blog/john-wes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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