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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리스톨 뉴룸 웨슬리교회


블리스톨


예배당


1739년 존 웨슬리는 브리스톨에 있는 두 종교 사회의 구성원들로부터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방'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결과로 생긴 건물은 여러 가지 목적에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존은 종교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을 제공하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근처 감옥을 방문하도록 주선하고, 무료 의약품을 운영함으로써 아픈 사람들을 돕도록 격려했기 때문이다. '계급제'(기독교인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방식)를 포함한 초기 감리교의 많은 특징들이 뉴룸에 처음 나타났다.


뉴룸은 너무 작고 충분히 지어지지 않아서 1748년에 다시 지어졌고 크기가 두 배가 되었다. 여기에는 존 웨슬리와 다른 설교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본실 위쪽에 방 한 벌을 만드는 것도 포함되었다. 이것들은 현재 박물관을 수용하고 있다. 새 건물은 공공예배를 위한 허가를 받아 곧 '존 웨슬리 성당'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지역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봉사하는 다층 건물로 남아 있었다.


존과 찰스 웨슬리가 죽기 전까지 뉴룸은 런던 외곽의 감리교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로 작용했다. 초기 감리교 회의의 많은 부분이 그 안에서 열렸으며, 브리스톨에서의 위치 때문에, 그것은 특히 감리교가 미국에 점점 더 많이 관여하고 이 운동의 노예 반대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이유로 많은 감리교들이 그것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다.


오늘날 예배당과 그것의 인접한 정원은 바쁜 도시의 중심에서 평화의 멋진 오아시스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매주 금요일 오후 1시에 누구에게나 개방되는 성찬 예배를 비롯하여 정기적인 예배가 행해지고 있다. 예배당은 또한 특별한 예배 행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시와 공연, 강의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예배당의 특징


오늘날 우리가 보는 예배당은 중앙의 퓨 블록을 제외하고는 1748년에 있었던 것과 같다. 이것들은 1808년부터 1929년까지 뉴룸을 소유했던 웨일스 칼뱅주의 감리교들이 소개한 좌석의 복사본으로 1929년 건물을 복원했을 때 지어졌다. 원래 좌석은 예배당 양옆과 화랑에서 볼 수 있는 벤치였다. 남녀는 따로 앉았다.


초기 감리교들은 폭도들의 공격을 자주 받았다. 1층에 창문이 없는 것은 그러한 공격에 대한 안전 조치였다. 이 건물은 또한 침입한 폭도들이 목사에게 빨리 접근하기 힘들도록 설계되었다. - 위층의 제한된 접근을 목격하라.


설교는 아침(오전 5시)에, 저녁에는 가끔 있었다. Wesley는 서비스가 시간에 맞게 유지되도록 큰 시계를 주었다. 위쪽 설교단은 설교자가 사용했고 아래쪽 설교단은 사람이 성경책을 읽거나 찬송가를 이끌기 위해 사용하였다. 노래는 동반되지 않았다. 여러분이 볼 수 있는 기관은 1930년대에 그 건물의 복원의 일부로 주어졌다. 그것은 1761년부터 존 스네즐러에 의해 지어졌다. 펄프 아래에는 존과 찰스 웨슬리가 주님의 만찬을 축하하는 교감 테이블이 있다. 때로는 사랑의 잔치(케이크와 물을 나누어 먹을 때)나 시계야간(새벽까지 밤새워 먹는 서비스)과 같은 특별한 서비스도 있었다.


브리스톨


브리스톨


브리스톨


브리스톨



https://www.newroombristol.org.uk/cha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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